주인장 스토리

시계 이야기(1) - 서랍 속의 롤렉스, 속목 위의 지샥

레전후 2025. 2. 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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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덕의 끝은 서랍 속의 롤렉스와 손목 위의 지샥이다.' 라는 말이 있다.

 

영화의 한장면같은 장면이 떠오르는 듯한 멋진 문장이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마치 영화의 한장면이 떠오르는듯 하면서도 시계에 관한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그야말로 명언이다.

 

시계는 사치품이다. 기능적인 면에서 고가 시계와 저가 시계의 차이가 크지 않고 브랜드 가치와 마감 퀄리티 이런게 중요한 품목이다. 시계에서 브랜드를 제외하면 그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시계 매니아들은 '해리티지'라는 단어를 달고 살면서 삼성전자가 초정밀 기계식 시계를 만들더라도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통 시계 브랜드가 아닌 패션 브랜드들이 만든 시계를 매우 깔보고 혐오하는 경향이 강하다.

 

* 평소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지샥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간주한다. (없어도 별로 다르진 않다)

 

여성들이 샤넬백에 로망이 있는 것처럼 남성들에게는 롤렉스가 로망이다.

더 비싸고 인정받는 브랜드들이 있지만 그 브랜드들은 일상에서 만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뭔지도 모른다.

랑예, 브레게, 오데마피계 이런 브랜드 아냐고 물어보면 어지간한 시덕 아닌 다음에야 처음 듣는다고 할 것이다. 일반인들 대부분이 아는 시계 브랜드 중 가장 비싸고 좋은 시계로 인식되는게 롤렉스이기 때문에 롤렉스는 상징성이 있고 이러한 입지는 시계산업이 붕괴하지 않는한 영원할 것 같다.

 

 

그넘의 시계 등급. 그들만의 빅5. 인류 절대 다수는 저 브랜드들을 모른다

 

 

 

 

문제는 롤렉스를 막상 가지게 되면 힘든 일상이 시작된다.

 

일단은 인스타 등에서 롤렉스가 살짝 나오게 포즈를 잡고 사진을 올려대는 허세충 이미지와 싸워야한다.

허세충 이미지와 싸워 승리해도 짝퉁으로 의심하는 시선들과의 싸움이 남아있다.

짝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도.. 현실에선 아무도 진품이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시계를 보란듯이 흔들지 않는다면(계속 만지작 거린다거나 뭐 그런류의 행동..) 당신이 차고 있는 시계가 어디 브랜드인지, 시계를 차고 있기는 하는지 절대 다수는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과시하고 싶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평상시 등산을 가거나 수영을 할때, 러닝을 뛰거나 사이클을 할때 롤렉스를 차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편한 복장으로 술먹으러 갈때 차기도 왠지 부담스럽다. 기껏해야 집에서 가끔 바라보며 흐뭇해 하거나 가까운 곳으로 마실나갈때, 또는 특별한 날만 차게 된다.

(당연히 예외는 있다. 잘나가는 티를 내는 것이 도움이 되는 일부 영업직종이나 주로 자리에 앉아있는 사무직 직장인 경우 업무시간에 찰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롤렉스를 알아보고 한마디 말을 건네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데일리로 쓸 툴워치를 하나 더 살까 고민하게 된다. 지샥을 차기 애매한 때도 많기 때문.

 

롤렉스는 서랍속에 두더라도 어짜다 시계를 주제로 대화할 일이 생기면 '나 롤렉스 *** 모델 있어!' 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딘가 든든하다. 개인 취향에 따라 티해미 또는 세이코, 시티즌 이런 쪽을 슬슬 보게 되는데.. 시계에 대해 뭔가 좀 아는 사람처럼 보이기 원하는 사람은 스위스 브랜드를 많이 볼 것이고, 실용주의자들은 유튜브를 검색하며 시티즌 국민칠판이나 세이코 터틀 같은 유명 툴워치 모델 중 선택을 고민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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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으면 좀더 윗급을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중에가면 그게 그거다.

티해미 급을 거쳐서 롤렉스로 가서 이미 이정도 등급 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처음 그 시계를 다시 차고 다니거나 컨셉이 다른 시계를 하나 더 사거나..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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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뭔가 본인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된다.

티쏘, 해밀턴이 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고 주변 사람들이 당신의 시계에 관심 없는 것은 여전하다. 국민칠판이나 복어, 터틀 같은 유명모델도 시계덕후 커뮤니티나 유튜브에서나 인기지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로다. 특히 밀리터리 워치의 경우 싸구려로 인식해서 그 시계를 찬 상대에게 그 시계 뭐냐고 물어보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티해미 등급 시계들의 문제를 깨닫는 것도 이쯤이다.

예를들어 티쏘를 차면 뭔가 시계를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은 착각이다.

시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알리에서 파는 디자인 좋은 중국산 파가니 시계만도 못하게 볼 것이고, 티쏘를 아는 시덕들은 저가 시계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진퇴양난이다.

(필자도 티쏘 좋아한다. PRX 같은 모델은 디자인이 일품이다. 중고로 접근시 단연 가성비 1위는 티쏘일 것이다.)

어쩌다 시계가 대화의 주제가 되는.. 그렇게 바라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들에게 티쏘가 어떤 브랜드고 어쩌고 저쩌고 해리티지가 어쩌고 설명할 기회는 아마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순간이 온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손목 위에 남는 것은 절대적 툴워치인 지샥이다. 아침에 시계를 고르는 순간.. 부담없고 튼튼하며 남의 시선따위 신경쓸 필요 없는 시계에만 슬슬 손이 가는 것이다.

서랍속의 롤렉스와 손목 위의 지샥. 그리고 옵션으로 중저가 라인의 서브 시계 하나.

나머지는 서랍속 맨 구석에 쳐박히거나 당근에 올라갈 것이다.

 

* 여기서 지샥은 편하게 막굴리는 튼튼하고 저렴한 툴워치를 통칭하는 대명사로 봐도 무방하다. (필자의 경우도 지샥이 있지만 주로 빅토리녹스의 시계를 착용한다.)

 

* 고급 시계를 사고자 한다면 애매한 브랜드 말고 바로 롤렉스로 가야한다는 주장에 필자는 동의하는 편이다. 

 

* 간혹 롤렉스 대신 튜더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튜더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롤렉스가 가지는 상징성과 든든함을 얻을 수 없다.

'서랍 속에 롤렉스 있어'와 ' 서랍 속에 튜더 있어'의 뉘앙스의 차이를 느껴보라.

튜터를 툴워치로 쓰기도 부담이다. 롤렉스가 있다면 튜더를 툴워치로 쓸 수 있겠지만 본인이 가진 가장 비싼 시계가 튜더라면 롤렉스의 위치를 대신해서 서랍에 박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 주변에 시덕이 많다면 이 글이 공감이 안될 수도 있다. 단,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시계는 한번 빠지면 불필요한 소비가 매우 크게 발생하는 취미다. 나의 글이 누군가의 불필요한 낭비를 막고 시계 선택에 대한 고민에 도움이 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오래간만에 쓰는 글의 주제를 시계를 했다. 최근 참다참다 처음으로 알리 시계를 하나 샀는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시계에 대한 글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다음 편은 알리 시계의 공습과 시계 산업의 미래에 대해 글을 써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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