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 스토리

스노우보드 이야기 - (1)장비병을 앓고 있는 그대에게, 데크 편

레전후 2024. 2. 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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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사용했던 장비들 기억해 보면서.. 글을 하나 남겨두고 싶은 생각으로 써본다.

 

보드를 오래 타다보면 절반 이상이 걸린다는 고질병이 있다.

 

"장비병"

 

끊임없이 새로운 장비.. 더 나은 장비.. 나에게 맞춤인 장비.. 더욱 간지 나는 장비를 찾아 헤매는 병.

 

장비를 교체하면서 '이 장비는 내 남은 보드 인생과 함께 한다!' 라고 결심했다가도 1시간만 지나면 중고나라를 뒤적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병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장비병의 시작은 어떤 장비를 교체했을때 짜릿했던 기분을 느꼈던 경험 때문이었던 것 같다..

보드 장비는 데크, 바인딩, 부츠 이렇게 3가지인데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바꾸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먼저 그동안 사용해본 데크들을 짚어보면서 왜 그 장비를 선택했었고, 느낌이 어땠고,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인지 글을 써본다.

 

 

첫 장비. 0405 로시뇰 트레비스라이스

 

 

첫 장비를 샀을때는 0506 시즌 후반인 2006년이었다. 처음 장비를 살 때는 무조건 헝그리보더에 잠복해서 중고장비 싸게 나오는 것을 노리라는 조언을 받고 3~4일간 페이지 리프레쉬를 해가며 매물을 파악했었다.

 

당시 헝그리보더의 분위기는.. 뭐랄까. 딱 선호하는 장비가 정해져 있는 느낌이랄까?

매년 트랜스월드 매거진이라는 곳에서 선정하는 TOP10 보드가 신격화 되어 있었고, 열심히 커뮤니티 활동하는 네임드들이 장비사용기를 쓰면 모든 게시판에 해당 장비 추천으로 도배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뭔가 꼬인듯한 성격을 가진 필자는 그들이 추앙하는 장비는 정말 사기 싫었었고.. 살짝 비선호 브랜드의 상급 데크 중에 고르다가 당시 보드계의 떠오르는 신성 트레비스라이스의 프로모델이 중고 매물로 나오자 덥석 물었다.

바인딩은 드레이크 F60.

 

당시 친구들이 샀던 데크들과 비교해서 상당히 무거웠다. 셔틀을 주로 이용하던 시기라 보드를 들고다녔어야 하는데.. 특히 버튼 커스텀을 샀던 친구와 비교 시 무게 차이가 상당해서 너무 부러웠다(티는 안 내었지만). 나중에 다른 데크들을 타본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너무 하드 해서 초보였던 필자가 타기에  무리인 데크였다.

 

교훈: 초보때는 초보자용 데크를 구해야 한다.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해 처음부터 좋은 장비 사라는 악마들의 말을 무시해라.

 

 

가장 즐겁게 탔던 시절 탔던 옵션 미러

 

0405 옵션 미러.. 그래픽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던 데크다.

바인딩은 플럭스 맷해머. 나중에 바인딩 편도 쓸 예정이지만.. 개인적으로 플럭스 바인딩은 이무렵 2개를 써보고 다시는 쓰지 않는 중이다.

 

당시 옵션은 인기가 좋은 브랜드였다. 특히 트랜스월드 TOP10에 들었던 적이 있는 미러와 산살롱은 꽤 추앙받던 모델이다. 트레비스라이스 모델에 비해 한결 다루기 쉬웠는데 문제는 충격을 받았을 때 데크 상판이 깨져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고 통으로 들려버리는 문제가 있어서 스트레스가 심했다. 

 

장비병의 시작. 옵션 리즌

 

 

한참 실력이 오르고 있다보니 장비 욕심이 이때부터 생겼던 것 같다.

2007년 무렵.. 최상급 장비를 써보고 싶은 욕망이 커지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옵션의 최상급인 리즌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디자인이 지금까지 써본 데크 중 가장 필자 취향에 가깝다.

바인딩은 깔맞춤으로 구한 SP 데니카스 프로 모델. 데니카스 모델은 전부 디자인이 좋은데 써본 장비들이 다 별로였다.

 

각 브랜드의 최상급은 매우 딱딱해서 타기 힘들다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인데 저 테크는 그 정도 하드하지 않았고 알리를 칠 때 쫀득쫀득한 느낌이 정말 좋았었다. 실력의 변화가 쭉 있었던걸 감안해도.. 지금 기준으로 평생 사용해 본 데크 중 여러모로 단연 최고였다고 기억되는 데크다. 성능도 부족함이 없었고 느낌이 좋았고 그래픽도 예뻤다.

 

이때 느낌이 너무 좋아서 장비병이 생긴것 같다. 더 좋은 데크가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기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모델인 옵션 리즌이 이 정도면 커뮤니티가 열광하는 다른 최상급 모델들은 과연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교훈: 마음에 드는 데크는 팔면 안된다. 당시에는 데크를 새로 사면 기존 장비를 바로 팔아버리곤 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새로 산 장비와 비교를 해보고 팔던지 해야 한다.

 

 

0607 사피엔트 PNB1

 

 

06~08년까지.. 아마 헝그리보더에서 가장 핫했던 데크가 뭐였냐고 물어보면 위의 모델을 뽑는 사람 꽤 있을 것이다.

사피엔트 PNB1. 데크 추천 글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그 이름.

바인딩은 K2 오토이다. 도대체 왜 저런 바인딩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바인딩인데.. 깔맞춤 해보려고 구해서 썼었다.

 

느낌이 어땠냐고?

최악.

이 데크는 뚱뚱하고 무겁고 거의 최고 플렉스 스펙이었던 로시뇰 트레비스라이스보다 더 하드 했다.

진짜로 하드한건지 느낌 탓인지 모르겠지만 턴이 어려울 정도로 컨트롤이 어려웠고 이 데크를 제대로 쓰는 사람은 괴수급 하채능력을 가진 고수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데크를 초보자들 첫 장비 마련하는데 추천해도 되나?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교훈: 장비 추천 절대로 믿지 마라. 그 사람들은 당신과 상황이 다르다.

 

위의 데크들 외에도 사이사이 몇 번씩 쓰고 되팔았던 데크들이 있다. 

 

0506 사피엔트 레볼루션

 

0607 캐피타 스테어마스터

 

레볼루션은 데크가 굉장히 좋았다. 문제는 그래픽 적응이 힘들었다.

스테어마스터는 지빙용 저가 데크는 어떤지 궁금해서 써봤다. 알리를 치는데 앞발을 들어 올려도 뒷발 반응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빙용 데크는 이런 것이구나를 확실히 알게 해 주었다.

 

교훈: 이장비 저장비 호기심에 타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보딩 시간이 충분히 넉넉한 게 아니라면 늘 쓰던 장비로 실력을 연마하는 데에 더 시간을 쓰는 게 좋았겠다는 후회가 있다. 

 

0708 BTM 트러스트스푼

 

스티커 작업을 처음 해봤다가 망한 BTM 최상급 트러스트스푼.

이 데크를 한번 써보고 이건 부서질 때까지 쭉 쓰겠다고 결심했던 데크다. (이 결심은 한 달을 가지 못했다..)

 

이 데크를 샀던 이유는 당시 소프트한 데크들은 일본데크가 짱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볍고 소프트하고 탄성 좋다는 인식?

요즘은 일본산 해머데크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서 하드 한 데크들 중심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당시는 일본산 하면 소프트 덱이 인기가 많았다.

 

명성대로 가볍고 느낌이 좋았다. 게다가 엣지가 울트라그립이라고 하는 톱니 엣지였는데 라이딩할 때 아예 느낌이 달랐다. 소프트한 데크의 단점을 어떤.. 새로운 시스템으로 커버하는 느낌이어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훈: 스티커 작업은 돈이 들고 센스가 필요한 일이다. 돈도 은근 많이 들고 되팔 때도 불리하다. 웬만하면 비추.

 

하지만 장비병은 점점 심해지는데.. 

 

0708 head 인텔리전스 ICT

 

더 이상 데크를 바꾸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충동적으로 질러버렸던 헤드 인텔리전스 ict.

 

라이딩 중 발생하는 정전기를 이용해서 데크의 떨림을 잡아주는 칩이 내장되어 있다던 데크이다.

이 무렵 깔끔한 검정색 데크가 좋아지기도 했고 head라는.. 보드쪽에선 비선호 브랜드에서 상당한 고가 데크를 출시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솔직히 저 칩이 동작은 하는 건지.. 과학적으로 근거는 있는 것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많이들 알겠지만 보드에 무슨무슨 기술이 들어갔다고 제조사에서 홍보하는 것들이 사실 거의 체감이 안된다. 체감이 확 되는 것은 캠버 형태, 톱니 엣지처럼 시각적으로도 확 다른 경우다. 하드한 정도나 데크의 길이 등은 체감이 되나 기술이 들어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외.

 

데크 자체는 무척 훌륭했다. 너무 하드하지 않으면서 쫀득한.. 옵션 리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바인딩 체결 시스템도 독특했는데 매우 좋았다. 

 

교훈: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는 홍보는 일단 패스해라. 최소한 3년 이상 지켜보고 해당 기술이 인정을 받으면 그때 관심을 가져도 늦지 않다.

 

0708 립텍 스케이트 바나나

 

대충 이 무렵이었나.. 역캠버가 핫해졌다.

어지간한 상급데크 아니면 쳐다도 안 보게 된 필자가 선택한 데크는 립텍 스케이트 바나나. 매우 유명한 데크다.

 

하루 쓰고 되팔았다.

여러 데크들을 경험해 왔지만 이렇게 큰 차이를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지금도 처음 보드는 배우는 사람들은 역캠버가 더 배우기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하지만 필자는 포기했다.

바나나하면 물결 엣지가 특징인데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역캠의 특징이 그 정도로 강렬했다.

 

다양한 캠버 유형은 경험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0910 오메틱 EXTR-ECO

 

파크 도전을 꿈꾸며 싸게 업어온 오메틱 EXTR ECO.

트랜스월드에 파이프 데크 저가 TOP10에 들었던 테크라 파크 입문용으로 써보려고 샀는데.. 결국 무서워서 파크는 포기했다.

당시에 돈 주고 강습을 받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가 크다. 파크는 혼자 들이대면 안 되는 곳 같다.

 

여담으로 이 무렵 트랜스월드 매거진이 용도에 따라, 가격에 따라.. TOP10 보드를 따로 선정하면서 개판이 되었다. 트랜스월드 선정 데크가 너무 많아진 것이다. 상업적으로 변질된 느낌도 들었다.

그다음부터는 커뮤니티에.. 트랜스월드 선정 데크라고 찬양하던 분위기가 싹 사라졌다. 

연말 시상식에서 공동 수상으로 상을 남발하면서 가치가 떨어진.. 그런 것과 같다. 

 

교훈: 장비를 다운그레이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장비병이 걸리면 기존 장비 아래 등급 장비들은 애착이 안간다. 장비를 다운그레이드 하는 것을 성공시킨다면 장비병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0910 살로몬 버너

 

2010 무렵 살로몬의 인기가 상당히 올라갔다. 그 전에도 인기가 있긴 했는데.. 오피셜이라는 데크가 천상계로 올라가면서 브랜드 이미지 자체가 바뀌었다.

특히 AS가 칭송받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브랜드 선호도가 올라갔는데 살로몬 데크를 써보고자 고르던 중.. 최상급이었던 스페셜과 동급이지만 스펙상 더 하드하고 대중에 알려지지 않고 희귀한 데크라 버너를 고르게 되었다.

그래픽도 마음에 들었었다.

 

나쁘진 않았는데 딱히 강한 임팩트도 없는 적당한 라이딩 데크였다. 기억에 남지 않는 정도.

인텔리전스 ict 157 사이즈를 쓰다가 이 모델은 163 사이즈를 사용했는데 라이딩 시 데크의 길이에 따른 차이를 크게 느끼긴 했다. 

 

교훈: 당시 살로몬 데크 중 일부 모델에 적용되었던 ERA 라는 시스템이 라이딩 중심의 보더들에게 칭송받는 분위기가 있었다. 필자는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이 무렵부터 해당 시스템이 사라졌다. 상식적으로.. ERA가 그렇게 좋은 시스템이면 왜  갑자기 없어졌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1112 rome 앤썸 SS

 

점점점점 심해지는 장비병 ..

 

보드 입문 이래 라이딩하면 항상 추천데크에 이름을 올리던 ROME 앤썸의 상위버전 SS 모델을 구했다.

상당히 하드한 느낌이었는데 이 무렵 실력이 늘어있어서 그럭저럭 탈만했다. 이 무렵 이미 장비를 여러 세트 들고 있던 상태라 돌아가면서 쓰느라 많이 타보진 못했는데 주로 친구들과 갈 때 과시용(?)으로 사용했다. 

 

썩 괜찮은 데크였지만 버너와 너무 비슷한 느낌이라 재미는 없었다.

 

교훈: 여러 라이딩덱을 경험해 보면서 느낀 점은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 

 

1112 rome MOD

 

앤썸 SS와 동일브랜드.. 당시 ROME 최상급 MOD.

둘의 용도가 달랐고 롬 카탈로그에 둘 다 최상급 라인에 같은 높이로 있었다.

 

이 데크는 평생 소장하겠다고 결심했던 데크다. 그래픽이 개인 취향은 아니긴 했는데.. 타는 게 즐거운 데크였다. 

최상급에 하드하지 않은 데크면 느낌이 이렇구나.. 를 제대로 느꼈다.

 

자주 쓰진 못했다. 스키장에 가볍게 놀러간다는 느낌으로 갈때 주로 들고다녔다.

 

1314 니데커 메가라이트

 

롬의 데크들은 오래 썼다.

2016년쯤 중고로 구했던 니데커 메가라이트를 쓰기 전까지는..

 

이 무렵에 장비에 대한 뭔가 회의가 들면서 주변의 시선을 인식하는 게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중에 알려진 고가의 장비들을 쓴다고 해서 아무도 나를 보고 있거나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고나 할까. 이것을 진작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데크는 라이딩 성향의 하드한 데크임에도 무게가 가벼워서 좋았다. 게다가 울트라 그립(톱니 엣지)이 적용되어있는데 이게 정말 좋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던 톱니 엣지.. 이건 사람에 따라서는 눈이 갈리는 느낌이 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좋다.

 

데크는 하드한 정도와 길이가 비슷하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데크가 그 생각을 깼다.

이때 다른 장비들을 전부 팔았다. 그냥 이거 부서질 때까지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켜지지 않았지만..)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서 뒷부분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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